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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지나친 관심이 불러 있으킨 헬조선 사건들

알콩달콩 살기 2017. 4. 1. 08:10



누구나 한번쯤 TV 속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며 "나도 TV에 출연해 유명해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봤을겁니다. 이렇게 방송에 출연하면 무조건 유명해 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방송때문에 유명해져서 불행을 겼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오늘은 TV, 영화 출연 등으로 유명해졌지만 불행을 겪은 분들의 사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인간극장 산골소녀 - 영자


산속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순수한 산골소녀였던 영자. 화전과 약초로만 살아가던 소녀였는데 한 사진작가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후 2000년 7월, KBS 프로그램 인간극장 '그 산 속에 영자가 산다' 편에 출연하면서 영자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학교 조차 나오지 못한 그녀를 위해 후원이 이루어졌으며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지요.


유명세가 계속되자 이동통신회사 였던 LG텔레콤의 광고까지 찍게 되었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되는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영자의 아버지가 산골집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신 왼쪽 쇄골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으며 콧등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범인은 영자의 아버지가 유명해 지면서 돈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 하는데, 정작 아버지에겐 현금 10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자의 후원회장이 출연료와 인세를 빼앗고 폭행까지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산골소녀 영자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라는 말을 남기고 혼란스러운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되었습니다. 뉴스와 언론사들이 갑자기 영자가 사라졌다며 그녀의 행방을 샅샅히 취재해 다니다가 절에 들어갔음을 확인해 또 다시 보도했다고 합니다.


이후 영자의 불행은 계속 되었습니다. 2001년 7월경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 시집을 냈는데 이것도 상의 없이 출판사 멋대로 낸 것이었음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현재는 속세를 떠나 스님으로 살아가고 있고 이후 그녀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2. 영화 '집으로' - 김을분 할머니


할머니의 따뜻한 정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명작 영화 '집으로' 에서 유승호와 함께 출연하셨던 김을분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영화 집으로는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객 420만 명을 동원했고 2002년 한국영화 흥해 순위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가졌던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가 이렇게 흥행이 되면서 떠돌아 다니던 강도와 절도범들이 할머니의 집을 배회하면서 할머니의 재산을 노렸고 또한 생명까지 위협을 했습니다.


강도와 절도범들의 살인위협과 지나친 관심이 계속 되면서 할머니는 견디다 못해 결국 60년 넘게 살고 있던 시골집을 청산하게 맙니다. 현재 김을분 할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합니다.




3. 영화 '맨발의 기봉이' - 엄기봉 아저씨


영화 '맨발의 기봉이' 는 지적장애인 마라톤 엄기봉씨를 다룬 영화인데, 영화가 성공하면서 엄기봉씨에게도 후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기봉씨의 여동생이 충남 대전지검 서산지청에 수사를 의뢰를 하게되는데, '후원금이 횡령이 된 거 같으니 진실을 밝혀달라' 고 호소했습니다.





그 당시 엄기봉씨가 받은 후원금만 억대에 이른다는 소문이 무성했었다. 실제로 엄기봉씨 통장에 있던 잔액은 1,500만원에 불과했는데 이중 1,000만원은 영화사 계약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럼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


여동생의 신고로 수사가 진행이 도는데 '엄기봉 새집 마련 후원회' 등 에서 모인 돈은 행사 비용으로 거액이 지출되었고 집을 짓기 위한 후원금 역시, 후원회 관계자가 2,000만원을 사용했고 그 후에도 조사를 진행했는데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신고했던 여동생이 석달 동안 엄기봉씨와 어머니 통장에서 1,300만원을 인출했고, 수사를 의뢰한 이유도 후원금 관계자가 빼돌린 2,000 만원까지 돌려받아 사용하려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혀졌습니다. 8살에서 지능이 멈춰버린 기봉씨를 이용해 먹은 것이죠.


기봉씨는 새 집을 마련하기 했지만, 믿고 있던 사람들의 배신감과 지나친 관심 때문인지 새 집을 놔둔 채 당원도로 이사을 갔습니다.



4. 영화 '워낭소리' - 최원균 할아버지


영화 '워낭소리' 는 경북 봉화 산골의 노인 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나이 많은 일소의 마지막 몇 년간의 생활을 담은 독립영화입니다. 이 영화도 대박을 치자 많은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와 할아버지와 사진을 찍고, 누가 있던지 아량곳 하지않고 집 안에 쳐들어 왔다고 합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찾아와 노부부의 일상이 깨졌던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죄수로부터 돈을 요구하는 협박편지도 받았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워낭소리를 연출했던 이충렬 감독도 대박나자, 주변 지인들이 달려들었고 결국 사기를 당해 재산을 다 날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충격으로 이충렬 감독은 뇌종야을 선고 받았고 워낭소리 주인고 최원균 할아버지는 폐암 투병끝에 2013년 10월 1일 별세하셨습니다. 최원균 할어버지의 유연대로 오랫동안 해온 누렁이가 묻힌 워낭소리 공원에 안치되셨습니다.




5. 골동품왕 - 남기석 아저씨


골동품왕, 남기석 아저씨는 1962년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가 작은 골동품 가게를 차려 평범한 가정생활을 꾸리며 살던중, 히틀러 밑에서 일했던 고위직 관료의 집을 경매로 낙찰을 받게 됩니다. 낙찰된 집을 찾아가는데 지하실 소파와 양탄자 밑에서 금괴와 현금(그 당시 가치로 30억)을 발견하는데 일부 소유권을 인정 받아 그는 순식간에 벼락부자가 되고 맙니다.





그는 전 재산을 골동품 수집에 투자하면서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손' 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그가 수집한 골동품에는 히틀러 음성이 담긴 녹음 테이프와 그가 섰던 책상과 장롱, 피카소 판화 등 다양하게 있었다.


수많은 골동품들을 모아 부자가 된 남기석씨는 후대를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청주시 어린이회관에 기증하면서 우암어린이회관의 매점 운영권을 부여 받습니다. 그 당시 삼성 이병철회장도 작품을 기증하면 평생 달마다 300만원씩 준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사기업에게 기부할 수 없다며 청주시를 선택했는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매점 운영권을 부여 받아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운영했는데 다른 당의 시장이 당선되면서 운영권을 박탈되었기 때문이죠. 그것 뿐 아니라, 남기석씨가 기부한 골동품 중 35점이 분실되고 훼손상태가 심한 상태였다고 하는데 분실된 물품에는 히틀러 궁전에 있던 18~19세기 탁자와 의자, 케네디 대통령 우표 등 고가의 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고 나라를 믿고 전 재산을 쏟아 부었던 기부가 배신으로 돌아오면서 남기석씨의 삶은 갈수록 더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되어 매일 아침 교통지도를 하며 월 20만원씩 버는 수입으로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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