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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소니 이성순, 최고의주먹이 된 일화

알콩달콩 살기 2017. 4. 11. 03:05



시라소니(이성순)는 호랑이 새끼가 절벽으로 새끼를 떨어뜨려 올라오지 못한 새끼를 뜻하는 말이죠. 그의 이력을 보면, 1916년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 1983년 1월 27일 항연 68세로 영면하기까지 조선최고의 주먹이라는 말과 동양최고의 주목황제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말들이 있는데 시라소니는 특정 무술을 배운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실제로 통뼈에 키가 큰편이었다고 하는데 실제, 레슬링 선수 출신 황병관과 팔씨름 대결에서 20분간 혈전을 벌일만큼 팔힘이 엄청났다고 전해집니다.



유지광의 자서전에 보면 그의 싸움실력은 양반다리 자세로 앉은 상태에서 수평 점프력이 3M이상 된다고 합니다. 시라소니 이성순(李聖淳)은 140km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을 만큼 민첩한 착지를 가지고 있는 운동신경이 있었고 1945년에는 야쿠자 카네미야 패거리 40명과 싸운일도 있었습니다.




카네미야는 원래 조선사람이었는데 그는 조선행인들을 상대로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깡패였다고 합니다. 비교적 좁은 골목에서 결투가 벌어졌지만 집단구타를 피하면서 민첩한 행동으로 싸움을 했다고 하는데 먼저 20명가량을 제압하고 남아있던 20명의 상대들은 그의 기백에 눌려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 싸움을 현장에서 목격한 카네미야는 그에 앞에 직접 찾아와 무릅을 꿇으며 패배를 인정 하는데, 말이 40:1 이지 혼자서 적진에 들어가 40여명을 쓰러뜨리는 용기는 직접 눈앞에서 안본이상 느낄수 없다고 합니다.


시.라.소.니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일화가 있었는데 평양에서 당시 이북지역 최고의 주먹황제 박두성을 쓰러뜨린 일화가 전성기라고 볼수 있었습니다. 당시 박두성은 이북지역의 최고 씨름꾼이자 싸움꾼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때였지요.



아무리 강했던 이성순이라고 해도 박두성의 엄청난 힘앞에서는 긴장을 풀수 없었다고 하는데 키가 크고 그도 박치기를 굉장히 잘했다고 하며 약관 21살의 어린나이인 그런 그를 찾아가 결투를 신청했으니 박두성 입장에서도 기가 찾을 것 입니다.


이성순은 일격에 박두성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그는 초반 형세는 다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으며 박두성은 점점 승리를 직감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박두성의 방심이 시작되었고 시라소니는 박치기를 시도했고 처음에는 빗나갔던 그의 박치기가 드디어 박두성의 이마에 적중했고 그 순간 박두성은 땅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박두성은 일어나지 못했고 시라소니가 이북 전체 최고의주먹 1위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만주로 무대를 옮겨 그의 명성을 이어갑니다.



시라ㅅ니의 주 무기는 박치기. 그의 박치기의 파괴력은 어마어마 했으며 그만이 할수 있는 특유의 스피드와 점프력이 박치기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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